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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샐러리맨 부자되기]10억 만들기 방법은 있다
   주위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10억원 부자'들은 많다. 평소 관심이 없거나 다른 세계라고만 여기고 살던 때는 그저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만 보이던 사람들이 눈을 뜨고 보면 바로 '10억원 부자'들이다. 친구나 가까운 선후배 사이에도 있다. 대학 때 과외에 열중하던 친구가 졸업 후 학원을 차려 10억원대 부자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10억원을 원한다면 눈을 떠보자. 10억원을 모은 다양한 사례다.
▲IMF 때 코스닥 주식으로 대박=H기업에 다니던 이모 대리는 아주 짧은 기간에 주식투자로 10억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IMF가 터지고 난 다음 증시는 그야말로 빈사상태가 됐고 지난 98년 여름부터 회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와중에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열풍으로 많은 돈이 증시로 몰려들었고 펀드매니저들은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대형주를 사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형주를 펀드에 편입시켜 놓아야 자신의 펀드가 종합지수를 쫓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대리는 거래소에 비해 소외받고 있는 코스닥에 주목했다. 거래소의 대형주들이 계속 큰 폭의 증자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고 하자 각 기업은 부채를 줄여 부채비율을 맞추려 하지 않고 자본금을 늘려 부채비율을 낮추는 편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또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나와 벤처사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계속 내비친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래서 코스닥 중에서도 인터넷 관련주를 주요 투자대상으로 삼았다. 시장의 관심은 코스닥으로 옮겨지기 시작했고 단지 코스닥이란 이유만으로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2∼3배 수익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무서운 장이었다. 이대리의 보유주식도 3배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이대리가 코스닥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을 때 투입한 자금은 단돈 1,000만원에 불과했다. 유·무상증자를 해서 주식수가 늘어나고 액면분할을 해서 주식수가 또 늘어났지만 그래도 주가는 처음 매입가보다 더 올라가 있었다. 두 배 오른 주식은 그때마다 2·3배씩 올랐다. 대한민국 증시 역사상 전무후무한 폭등장세였다.

99년 들어 너도나도 코스닥 종목을 사지 못해 안달을 하고 물량을 늘리라는 투자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때 이대리는 보유주식을 모두 매도해 10억원이 넘는 엄청난 현금을 챙긴 뒤 증시를 떠났다. 4월 이후 등록되는 물량이 엄청나게 늘어나 결국 공급이 수요를 압도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대리의 나이 35세였다. ‘모두가 환호할 때 떠나라’라는 증시의 투자원칙에 따라 부자가 된 경우다.

▲대학생 때 과외 경험으로 학원 차려 부자=서울 강동구에 학원을 차린 이모 원장은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취직 대신 학원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취직이 쉽지 않은 것도 이유였지만 대학생활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한 게 계기였다. 처음에는 강사 급여도 겨우 맞춰줄 정도로 고전했지만 부지런함으로 최단시간 내에 자리를 잡았다.

155㎝의 단신에 왜소한 체격인 이원장의 무기는 성실과 노력. 직강을 맡은 수학과목은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결강한 적이 없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강의시간이 되면 기운을 내 강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학원에 나와 학생들이 돌아가는 새벽까지 학원을 지켰다. 원장이라면 일찍 퇴근할 수도 있었지만 이원장은 달랐다. 이런 성실과 노력이 이원장을 족집게 선생으로 만들어줬고 그 유명세로 학원은 더욱 번창했다. 이원장의 고등학교 때 성적은 중간 정도. 대학에 가서도 평범하게 지낸 여학생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마흔이 되기 전에 10억원 부자 대열에 들었다.

▲수입의 절반을 저축하며 포목장사로 부자=지금은 50대인 설모씨는 30대 초반 직장생활을 하다 포목점을 차려 성공한 경우다. 월급쟁이 시절 실수령액의 50%를 무조건 정기적금으로 저축했다. 물론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설씨가 이처럼 돈을 모으기로 결심한 것은 소작농인 부친에게 논 몇 마지기를 사드리기 위해서였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로 결심하고 적금을 부었는데 그 와중에 부친이 돌아가셨다.

설씨는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시장에서 포목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할 때도 수입의 절반은 반드시 저축했다. 포목장사를 시작할 때 시장 입구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을 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설씨는 결국 그 건물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땅을 사 새 건물을 짓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한 우물을 파 부자가 된 경우다.

▲내 집 마련이 10억원대 부자의 출발점=삼익악기를 다닌 송모씨는 28세였던 87년 결혼하고 인천시 부평에서 16평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어른들로부터 ‘설움 중에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는 말을 귀담아듣고 전세 대신 집을 산 것. 위치는 회사가 부평에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송씨가 이 아파트를 살 때 들어간 돈은 고작 400만원에 불과했다. 아파트 매매가는 1,450만원이었지만 750만원은 당시 주택은행에서 장기대출,300만원은 경기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매달 만만찮은 대출이자를 갚아야 했지만 내 집이 마련됐다는 기쁨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 이 아파트는 80년대 말∼90년대 초 부동산 가격 폭등에 힘입어 3,000만원이 됐다.

단순 집값만 따져도 2배,자기 돈 400만원에 비하면 무려 8배였다. 송씨는 이때 집을 팔고 같은 지역에서 24평으로 옮겼고 지금은 42평에 살고 있다. 송씨는 그 사이 예전에 자신이 살던 16평 아파트를 3채나 보유하고 있다. 지어진 지 오래 돼 재건축 가능성이 높고 바로 옆에 큰 길이 새로 났다는 점에서 투자가치도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씨는 최근 부동산 폭등으로 가격이 또다시 올라 현재 10억원대의 자산을 구축해놓고 있다.

/정호석 freedom@sportstoday.co.kr

근데 위내용에 보면 샐러리맨의 10억만들기 방법은 없고 87년에 산 부동산 폭등으로 인해, 월급쟁이시절 50%저축 후의 사업으로 인해, 과외경력으로 학원차려서, 주식투자로 인해,...
 도대체 월급쟁이가 10억되는 방법은 어디 있다는 건지..저축만해서는 될수 가 없는 것인가? 결국엔 사업인가? 주식? 부동산? 모두가 자본을 필요로 한다. 월급쟁이의 한계다.
결론은 다른데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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